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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플렛 디자인/ 육근병(설치미술가)



모호한 경계에 서서

무엇을 드러낸다는 것은 고통과 수줍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드러내지는 것은
보여지는 현상은 같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박병춘,
그는 어스름한 질곡의 세월을 날카로운 정신의 칼날로
십수년 수없는 상처를 내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마치 종교의식처럼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그의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그가 그토록 드러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지난겨울 서리가 몇 번 내려 쓸쓸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양평 작업실에 들렀다.
오랜만이다. 반갑다. 뒷산 큰 바위 능선 뒤로 지는 해가 송림 사이에 걸렸다.
비릿한 날 것의 향이 스믈스믈 피어오른다.
암울했던 80년대 초 모든 것이 돌아 앉아 있을 때 우리는 모로 누워 버렸다.
그리고 28년이 흘렀다.

일찍이 카를 융(C. G Jung)은
자아의 인자가 강력하게 지배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그것은「나」라고 하는 아집에 집착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예술가에 있어 아집은
가끔은 일반 사회 통념을 벗어난 새로운 변종을 잉태하기도 한다.
그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또 다른 세상을 원하기 때문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상에서 느끼는 현재는 오감을 통해 즉물적으로 표현 되지만
내적인 사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복잡해진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어스름한 경계에서는
작가의 무의식을 통해 사물의 표층심리와 심층심리를 동시에 인지하게 된다.
그러나 정적 작가가 드러내 놓고 싶어 하는 정신적인 결과물은
표층심리와 심층심리의 괴리감에서 방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고통이 수반된다.

박병춘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교차되고 반복되는 선들의 집합은
현실과 이상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든다.
형상은 드러나되 일상의 오감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다.

기실 선은 면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면이 선이 되려고 하는 욕구와 마찬가지로
선은 또 선으로서 항상 면이 되려고 하는 욕구로 충만 되어 있다.
선은 선을 발생시킨 면을 그 내적 필연으로서 내포하고 있다.
선은 완전한 면의 상징이자, 완성이다.

박병춘 작업은
선이 갖는 필연과 면이 선이 되려는 절대 가치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태생적 고민을 안고 있다.

작가의 차가운 이성은 불확실한 시대상황을 즉물적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모호한 경계에서서 전체상을 조망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밤은 깊어가고 산골짜기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2009년 2월    김  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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